MEMORIAL STORY

일상 속 전쟁史

가우가멜라전투에 나선 알렉산드로스(출처: 브리태니커)

약관(弱冠)에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마케도니아의 청년 군주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er The Great , 이하 알렉산드로스)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에게 그리스는 작은 연못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바다 건너 동방을 향하고 있었다.

이강원 작가_동물칼럼니스트

전쟁 영웅, 알렉산드로스

그리스와 터키를 가로지르는 다르다넬스 해협(The Dardanelles)은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해상 경계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는 원정대를 이끌고 다르다넬스 해협 앞에 우뚝 섰다. 본국 마케도니아와 점령지 그리스에서 그가 동원한 병력은 기병 6,000기를 포함해 총 4만 2,000명으로 원정의 성격에 비해 많지 않은 규모였다.

알렉산드로스 이전에도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넌 야심가가 있었다. 기원전 480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Achaemenid Persia, 이하 페르시아)의 군주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와 반대 방향으로 해협을 건너서 서진(西進)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정복전쟁 경로(출처: 브리태니커)

영화 <300>은 화려한 시각효과로 유명하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도 이런 기술적 요소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소수 병력으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스파르타 국왕 레오니다스와 침략군의 수장 크세르크세스 1세의 연기 대결은 관객들이 끝까지 영화에 몰입하게 했다.

그래서 액션 영화 팬이라면 크세르크세스 1세는 낯선 인물이 아니다. 페르시아는 지금 국경 기준으로 22개국의 전부 혹은 일부를 차지했던 대제국이었지만 번왕(藩王) 제도 대신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펼쳐 많은 병력과 물자를 신속하게 동원할 능력이 있었다. 일설에는 당시 원정대가 170만 규모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과장이 많이 섞인 것으로 30만 정도로 보는 게 정설이다. 동방의 대군에 맞선 그리스 연합군은 양적인 면에서는 감히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열세였지만 고국을 지키기 위한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그 결과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플라타이아이 전투(Battle of Plataeae) 같은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승리하며 적군을 저 멀리 그들의 근거지로 몰아내버렸다. 알렉산드로스의 병력은 146년 전 크세르크세스의 원정대와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병력 부족의 문제점을 자신만의 전술로 극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장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을 준수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에서 싸웠다.

또 공격 기회가 생기면 결코 주춤하지 않고 과감하게 적의 허를 찔렀다. 그 결과 “세상의 끝을 보겠다”는 영웅의 말은 하나씩 실현되기 시작했다.

코끼리 부대의 역할

동오(東吳)의 대도독 주유(周瑜)는 문무에 능한 장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 같은 경쟁자가 있었다. 제갈량(諸葛亮)이라는 걸출한 책사 덕분에 동오에 비해 군세가 약했지만 유비(劉備) 군영은 주유의 먹잇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방 원정을 떠난 알렉산드로스는 제갈량 같은 경쟁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 결과 순풍에 배를 띄운 것 같은 기세로 진군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 국왕은 ‘왕 중의 왕(the King of Kings)’이라는 뜻을 가진 ‘샤한샤’로 불렸다.

중국의 황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다리우스 3세(Darius III)는 그런 높은 칭호의 무게 값에 어울리는 통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대를 맞아 병력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음에도 대패하고 제국의 동쪽 끝인 박트리아(Bactria)까지 도주했기 때문이다. 박트리아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을 합친 지역이다. 박트리아에서 재기를 노리던 샤한샤는 자신의 부하인 그곳 태수 베소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주군을 죽이고 임금임을 자처하던 베소스의 최후도 비극적이었다. 침략자 알렉산드로스가 다리우스 3세를 죽인 원수로 그를 처단했기 때문이다.

자마전투에서 우왕좌왕하는 카르타고의 코끼리 부대
(출처: Brewminate)

마침내 알렉산드로스의 원정대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넌 지 7년이 되던 해인 기원전 327년 인도 대륙의 입구에 섰다. 영웅은 힘든 일을 겪어도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은 다르다. 힘들면 쉬고 싶고, 가족들과 떨어지면 보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병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전쟁에 지쳐갔다. 영웅은 ‘세상의 끝’을 보길 원했지만, 병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사기가 저하되던 원정대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가까운 미래에 전장이 될 인도 내륙에 코끼리 수천 마리로 구성된 대규모 코끼리 부대가 기다리고 있고, 잘 훈련된 수십만 대군이 결전을 벌일 준비를 했다는 정보가 입수된 것이다. 6,000마리 코끼리 부대와 20만 대군이 기다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원정대는 인도에 도착하기 전인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Gaugamela)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코끼리 부대와 맞서 싸운 적이 있었다. 당시 비록 승리했지만 상당한 수준의 희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참여한 적군의 코끼리는 15마리에 불과했다. 그러니 인도에 수천 마리의 코끼리 부대가 존재 한다는 소문은 알렉산드로스의 부대에 엄청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싸우면 이긴다는 상승(常勝) 원정대의 발걸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마음속의 공포심은 갈수록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승리가 요원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정복을 단념하고 회군을 결정했다. 다음 행선지는 그가 이미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옛 수도 수사(Susa)였다.

2,300여 년 전 6,000마리 코끼리 부대와 20만 대군이 인도에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소문의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미지의 코끼리 부대가 전쟁에 종지부를 확실히 찍은 게 중요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코끼리 부대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전쟁은 심리전이라는 사실이 확실히 증명된 순간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북서부 파우라바왕국(Pauravas)과의 전투에서 13만 대군을 이끈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스를 출발할 때의 병력보다 무려 3배나 되는 수치다. 이는 원정대가 점령지에서 신규 병력을 보충받았음을 의미한다. 미지의 땅을 정복하는 것에 열광한 영웅에 게 병력과 물자가 계속 제공되었다면 전쟁의 불길은 인도를 넘어 동쪽으로 계속 번졌을 것이다. 코끼리 부대가 더 큰 전쟁의 참화를 막았다고 할 수 있다.

명장 한니발과 코끼리

코끼리 부대를 언급할 때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빠지지 않는 이가 있다. 알렉산드로스 못지않은 전쟁 영웅인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공화국을 존망의 기로까지 몰아붙였던 카르타고(Cartago)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다. 하지만 그런 장수도 코끼리 부대 운영에는 신통한 실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근거지인 스페인에서 병력과 물자를 징발하여 로마 원정에 나섰다. 당시 원정에서 그는 코끼리 37마리를 동원했다. 하지만 대부분을 행군과 알프스산맥 등반 과정에서 잃어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극소수의 코끼리만 살아남았다. 그 결과 한니발은 로마 원정에서 코끼리 부대를 사용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니발은 단기전을 원했지만 로마와의 전쟁은 그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전장은 이탈리아에서 카르타고 본토로 바뀌었다. 기원전 202년 카르타고 본토에 상륙한 로마군은 현지 동맹군과 연합하며 자마(Zama)에 집결했다. 한니발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카르타고를 지켜야 했다. 그는 평소 기병의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술을 선호했지만 자마에서는 그런 조건이 주어지지 않았다. 당대 최고 수준의 기병을 다수 보유한 누미디아(Numidia)의 국왕 마시니사(Masinissa)가 이번에는 로마 편에 붙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기동력을 자랑하는 누미디아 기병 6,000기는 이미 말 머리를 카르타고군을 향하고 있었다. 한니발은 장기판으로 치면 차(車) 두 개를 모두 버리고 시합해야만 했다.

자마전투(Battle of Zama)에서 한니발의 궁여지책(窮餘之策)은 코끼리였다. 그는 코끼리 80마리로 부대를 편성하고, 적의 보병을 무력화하려 했다. 당시 코끼리 부대는 현대의 기갑부대와 역할이 비슷했다. 무장과 기동력이 취약한 보병에게 코끼리 부대의 돌진은 치명적일 수 있다. 카르타고군의 최전방에는 코끼리 부대가 위치했다. 장기판의 상(象)이 그동안 카르타고군에서 누미디아 기병이 맡았던 차의 역할을 대신 맡은 격이었다. 하지만 한니발의 전술은 적장 스키피오(Scipio)에게 이미 간파된 상태였다. 그는 코끼리 부대의 돌격에 대비해 보병의 대열을 평소보다 넓게 배치했고, 코끼리 부대가 돌진하면 보병들이 간격을 더 많이 벌리도록 지시했다. 바둑으로 치면 몇 수 앞의 적의 공격까지 대비한 것이다. 결국 코끼리 부대의 돌진은 적의 보병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도리어 코끼리 부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일으켰다. 로마군이 내는 소음에 흥분한 코끼리들이 카르타고 본영 기병대를 향해 돌진하면서 기병들이 제대로 된 전투도 치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누미디아의 이탈로 가뜩이나 기병 전력에서 열세를 보였던 카르타고 입장에서는 만회하기 어려운 뼈아픈 손실이었다.

코끼리는 소리에 예민한 동물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어찌 보면 자마전투에서 코끼리 부대가 아닌 코끼리라는 동물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 코끼리는 로마 진영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카르타고 본진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을 뿐이다. 문제는 덩치 큰 코끼리들의 이동에 군마(軍馬)가 겁을 먹었다는 것이다.

기병의 부족을 극복하고 적의 보병을 무력화할 것으로 굳게 믿었던 코끼리 부대의 좌충우돌로 카르타고군은 자마에서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궤멸당하고 말았다. 물론 그 외의 패인도 다수 있지만, 이 두 개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 결정적 패인이었다. 이로써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로마와 경쟁하던 해상대국 카르타고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여하튼 명장 한니발에게 코끼리는 맞지 않은 동물이었다.

1. 누미디아 국왕 마시니사(출처: 구글) /
2.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출처: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