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AL STORY

역사의 순간

병인양요 갑곶진 전투 기록화

홍성열_전쟁기념관 학예연구사

서세동점의 시대,
서양세력과의 첫 전투 병인양요

조선 23대 왕 순조(純祖)의 즉위와 함께 문을 연 19세기는 서구 열강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를 침탈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동아시아 세계는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거센 물결 앞에서 결국 문호를 개방하고 그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사회로 편입하기 시작하였다. 동아시아의 대제국 청은 1840년 영국과 치른 아편전쟁에 패배함으로써 개항, 본격적으로 서양세력의 침탈을 받았고,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포함외교(砲艦外交)를 앞세운 강압적인 통상 요구를 통해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러한 서구 열강의 진출은 조선에서도 예외 없이 진행되었다. 조선 근해에 이양선(異樣船)이 자주 출몰해 자신들과의 통상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난 전쟁이 병인양요(丙寅洋擾)이다. 서양세력과의 첫 전쟁이었던 병인양요는 강화행궁이 파괴되고 외규장각 도서 등이 약탈되는 등의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양헌수 장군의 지휘 아래 조선군의 분전으로 프랑스를 격퇴하였다. 병인양요와 관련된 내용은 당시 글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병인일기(丙寅日記)

『병인일기』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 작성한 『난중일기』처럼 병인양요 당시 순무천총(巡撫千摠)으로 참전한 양헌수 장군이 진중에서 직접 기록한 일기이다. 양헌수 장군이 제주목사에서 동부승지의 발령을 받아 돌아온 1866년 음력 9월 3일부터 10월 26일까지 53일간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일기 말미에는 양헌수 장군이 같은 해 9월 11일 프랑스 함대 제독에게 보낸 격문인 전격양박도주(傳檄洋舶都主) 1편이 실려있다. 『병인일기』에는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격퇴하기 위해 강화도로 진입한 내용 등 작전 기록과 전쟁을 진행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감정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자신의 감정을 기록한 부분에는 강화도 탈환을 위해 출정한 이후에도 탈환 작전이 지지부진하자 아군의 사기가 떨어진다며 초조해하는 내용, 답답한 나머지 손돌 무덤에서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내용 등도 기록되어 있다.

정족산성접전사실(鼎足山城接戰事實)

『정족산성접전사실』은 『병인일기』와 함께 병인양요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병인양요 중 특히 강화도 손돌목을 건너 정족산성에 입성해 그곳에서 프랑스군과 전투한 사실을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병인 10월 초1일 한밤중에 바다를 건너 산성에 들어가 초3일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접전하여 미시(未時: 오후 1~3시)에 이르렀다.”라는 표지의 글귀처럼 3일간의 전투 사실을 집중적으로 기록하였다. 이와 함께 정족산성 전투에 참전한 군인과 결과, 개인별 공적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서구 열강과의 첫 조우였던 병인양요. ‘기록의 나라 조선’이라는 이름처럼 병인양요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여 후세에 알리고자 하였다. 이렇게 남긴 기록들은 현재까지 전해져 우리가 병인양요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였다. 『병인일기』와 『정족산성접전사실』은 2009년, 양헌수 장군 후손들이 전쟁기념관에 기증하여 현재 전쟁기념관 전쟁 역사실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물을 보면서 프랑스군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웠던 양헌수 장군과 조선군의 심정을 느껴보기 바란다.

1.『병인일기』 2. 『정족산성접전사실』
3. 양헌수 장군의 병부주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