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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문화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진행된 트래비스 스콧 콘서트
(출처: 트래비스 스콧 공식 유튜브)

최근 데뷔한 K-POP 그룹 에스파(aespa)의 노래 ‘Next Level’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한 번 들어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가사와 콘셉트는 아마도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방위적인 관심을 반영하는 듯하다.

김한결_중앙대학교 접경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새로운 세계의 시작

지난 7월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가 공개적으로 메타버스 구축에 대한 야심을 밝힌 이후 이 신조어는 연일 언론에 소개되며 사회, 경제, IT-ICT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예술, 소셜 미디어, 게임을 비롯한 대중문화 안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잘 알려졌듯이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했다. 메타버스란 초월, 나아가 가상을 의미하는 meta(메타)와 세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universe(유니버스)의 합성어로, 쉽게 말해 가상 세계를 말한다. 다만 이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그 안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공상과학적 유토피아-디스토피아 개념이나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 등과 구분된다.

언뜻 ‘나’와 ‘세계’의 팽창과 분열을 요구하는 듯한 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 1990년대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약칭 MMORPG), 2003년 나온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 등 인터넷 기반 가상 세계 플랫폼 등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메타버스 개념을 접목한 이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온라인 슈팅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래퍼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에 이어 유명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의 콘서트가 포트나이트 게임상에서 열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확장과 발전을 거듭하는 메타버스

또 메타버스는 우리 일상 속에서 이미 친숙해진 SNS의 확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를 통해 이미 메타버스의 한 유형이 나타난 바 있다. 일종의 아바타(avatar)인 ‘미니미’와 ‘미니룸(내 방)’ 꾸미기, 다른 이의 방에 놀러 가기, 함께 사진 찍기 등 가상공간에서 나를 대변하는 캐릭터를 이용해 다른 이(의 캐릭터)와 소통해본 경험은 메타버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최근 가장 진화한 형태의 메타버스는 우리가 주로 VR(가상현실) 기기 등 각종 최첨단 시각기기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3차원 가상공간이다. 페이스북이 내놓은 호라이즌(Horizon), 미국에서 개발되어 전 세계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로블록스(Roblox)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로블록스의 가입 화면에서 사용자 이름 입력 칸에 적혀 있는 ‘실명을 사용하지 마세요’라는 문구는 의미심장하다.

이들 플랫폼이 기본적으로 그 형태나 목적에서 게임에 더 가깝다면,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Z가 운영하는 ‘글로벌 AR(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Zepeto)는 이미 2018년 3월부터 상용화된 ‘가상 세계 플랫폼’이다. 여기서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들 캐릭터가 사용하는 가상의 상품을 만들어 실제로 거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요컨대 메타버스란 온라인 게임, 사회관계망 형식의 쌍방소통, 상거래, 엔터테인먼트 등 현대인의 일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 가상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가상 세계는 우리 세상의 변화를 반영해 확장과 발전을 거듭한다.

그러나 이 진화하는 가상 세계는 우리 삶의 겉모습만 닮아가지 않는다. 인간 심리를 고찰하는 더욱 철학적인 고민을 담아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라는 개념 자체가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사회관계 단절로 인한 사람 사이의 소통 욕구를 해소할 창구로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고, 밥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도 상대방을 전염시킬 우려가 없는 이 청정한 픽셀의 세계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멋진 대안인가? 또 롤플레잉 게임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메타버스는 일종의 대리만족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자아실현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의 역할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서는 욕망의 전시와 관음, 능력 과시의 창구로 비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일련의 메타버스 서비스들은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완전히 다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세계인 것처럼 선전되는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더 멋진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현실도피 욕구를 자극하는 매력적인 상품이 아닐 수 없다.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진행된 트래비스 스콧 콘서트
(출처: 트래비스 스콧 공식 유튜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18년 내놓은 공상과학영화 <레디 플레이어원(Ready Player One)>은 게임과 결합한 메타버스의 매혹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개봉 당시 큰 호응을 얻었다. 가상 세계 ‘오아시스’ 속에서 주인공은 거대 기업의 탐욕에 맞서 메타버스를 지키려 고군분투하지만, 사실 이 싸움은 인간의 ‘실존’과 그 안식처를 찾기 위한 여정이나 마찬가지다. 다음과 같은 영화 속 대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상기시킨다. “현실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인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왜냐면 현실은 진짜니까(As terrifying and painful as reality can be, it’s also the only place that you can get a decent meal. Because reality is real).” 그래서 주인공의 싸움은 보잘것없는 현실에서 출발해 화려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메타버스를 경유한 뒤, 다시금 현실을 찾아 돌아오는 귀환의 서사를 따르고 있다.

싸이월드(출처: 싸이월드 제트)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메타버스 개념이 처음 등장한 닐 스트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출처: 예스24)

비현실과 초현실의 전제조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Next Level’의 가사에서 드러나는 난해한 ‘세계관’ 안에서도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유용한 부분은 바로 현실의 나와 가상의 나 사이의 ‘결속’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일 것이다. 각자 가상현실 속 아바타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콘셉트를 들고 나온 이들은 가상 세계의 화려함과 유혹에 흔들려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진짜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노래한다. 실제로, 메타버스 형식의 소통이 점차 유행하고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현실과 가상, 또 오프라인과 온라인 세계를 혼동할 우려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앞서 말했듯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여기에 강력히 작용하기도 한다. ‘대면 수업’ 또는 ‘오프라인 회의’라는 말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온라인, 비대면, 나아가 가상현실은 지금 우리에게 불가피한 일종의 새로운 일상–뉴노멀–이자 규범으로 인식된다.

라틴어로 ‘Hic et nunc’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지금, 여기’라는 의미로, 라틴어에 뿌리를 둔 유럽어에서는 ‘당장, 빨리’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금 여기에 바로 내가 있다는 현실 감각을 환기하는 말이다. 지금, 여기, 내가 있다. 그것만이 모든 비현실과 초현실의 전제조건이다.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이 비로소 모든 여행과 일탈을 아름답게 하듯이.

싸이월드(출처: 싸이월드 제트)